이아리

미래의 토대

도담 2022. 1. 8. 21:33

"... .. 그래서 내가 틀렸나 봐, 아리야."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그저 웃으며 말을 잇는 오빠를 보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말을 다시 주워 안아 삼키게 된다. 오빠는 틀리지 않았어. 내 세상의 전부이자 내 세상 단 하나뿐인 빛인 오빠가 틀릴 리가 없잖아. 내가 만일 오빠가 틀렸다 생각한다면 그건 내가 틀린 게 될 거야. 오빠가 아니라 내가.... 분명 이 말들을 입에 담으면 오빠는 맑게 웃겠지. 그래서 입에 담지 않고 나도 평소처럼 웃어보았다. 이 웃음이 모든 걸 가려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실은 이 생각이야말로 틀렸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 그럴 리가..."

 

 

저 순수하다면 순수한 얼굴을 마주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거 같아 오빠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한다. 절대 눈을 피하지 마. 피하는 순간 나는 저 맑은 푸른 눈에 빠져 죽어버리고 말 테니까. 이런 살얼음판에서 살아가는 나도 참, 힘들게 사는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웃어보았다. 좋아, 이쯤이면 눈치채지 못할 거야. 오빠는 둔하니까. 그러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림짐작도 못하고 있겠지. 그러니 괜찮아, 나는 괜찮을 거야. 그리 암시를 걸었다.

 


"아니, 그보다 아리야. 이번 주에 봉사를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가줄 거지? 우리 항상 같이 갔잖아."


다짐도 소용이 없었는지 저 푸른 눈을 피하고 말았다. 머지않아 저 파도가 나를 휩쓸어 저 멀리 깊은 심해로 나를 끌고 들어가고 말 거야. 내 결정적인 실수는 저 푸른 눈의 바다를 거절하지 않고 휩쓸려준 것일까. 아니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따라준 게 실수였을까.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행했고, 빛을 따랐건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빛이 나를 집어삼키려 하다니. 온전한 내 실수다.

 

 

"헛소리하지 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질렀다. 저질러버렸어. 나도 모르는 새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 외마디 문장에 나도, 오빠도 그저 서로를 마주 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넘실거리는 푸른 눈이 나를 휩쓸어 저 깊은 심해 어딘가로 끌고 들어갈 것만 같아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는 오빠가 아니야. 생판 남인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단 말이야. 우린 절대 닮을 수 없을 거야.

나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

 

 

그리고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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